2010. 11. 30.

LA 도착

부산에서 나리타까지 약 2시간, 나리타에서 LA까지 9시간의 길고 지루한 비행시간을 견디고 LA에 11월 30일 오전 10시경에 도착! 입국수속 및 세관통과에 대략 1시간 반이나 걸리고 말았다. 어쨌거나 기쁜 마음으로 LA 지역 베이스캠프인 Wilshire avenue로 출발!
듣던대로 LA에는 히스패닉 인구가 상당히 많다. 굳이 아르헨티나까지 먼 길 갈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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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로 출발!

드디어 D-Day. 11월 30일!
LA로 출발하기 위해 김해공항에 모인 Lee family와 Yong family는 가족들과의 애틋한 시간을 뒤로하고 도쿄를 거쳐가는 LA행 비행기에 올랐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즐거웠던 시간은 이제 모두 안녕! 아메리카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레츠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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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11. 17.

이륜차 보험환급

국내 도로법에는 공도에서 이륜차를 운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책임보험에 가입되어 있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어길 시에는 무지막지한 범칙금과 심지어 형사처벌 또한 가능하다. 이것은 이륜차를 운행하는 나 자신 뿐 만 아니라 공도를 공유하는 다른 운전자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지극히 당연한 규정이다.

LeeYong 또한 ST7을 인수받고 각자 주소지의 관할 구청에서 이륜차 등록을 하면서 M으로 시작하는 보험사에 책임보험을 의무적으로 가입했다. 하지만 이번에 모터사이클 두 대를 모두 배에 실어 LA로 보내고 나서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공도에서 모터사이클을 운행할 일이 없어졌다. 그렇다면? 당연히 기존에 가입되어 있는 이륜차 보험을 해지하고 남은 보험금을 환급 받아야 된다는 얘기다. 보통 1년치 보험금을 가입 시에 일시 납부하게 되고 (차량에 따라 다르나 ST7의 경우 30만원 대) 가입 후 한 달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 보험을 해지하게 되면 1인당 약 20만원 가까운 돈이 생기게 된다. 이 말은, Steve Jobs敎의 지침대로 헝그리한 삶을 영위하는 Lee와 Yong이 미국에서 먹을 수 있는 중국 사천style 볶음밥의 양이 대략 100개나 증가한다는 아주 배부르고 등 따신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보험사는 영리하다. 많은 돈은 절대 아니지만, 이미 받은 돈을 단숨에 토해낼 그런 통 큰 조직은 아니었다. Lee가 보험사에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부담스럽게도 친절한 직원 언니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았지만, 갖가지 서류 미비의 구실을 들어 끝까지 친절함을 잃지않고 보험금 환급을 거절했다. 더군다나 보험사에서도 이런 경우(모터사이클을 해외로 임시 반출하게 되어 불가피하게 보험을 해지하고 환급받아야 하는 상황)는 많지 않아서인지, L이 문의전화를 할 때 마다 자기들끼리 지하벙커에서 격렬한 미팅을 갖기라도 하듯, 시간이 오래 지체되었다.

“고객님, 오래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알아본 결과, 고객님께 보험금을 환급하기에는 애로사항이 있습니다.” 이 직원, 저 직원 전화를 돌리더니 결국은 같은 말만 되풀이하길래, 인내심의 한계를 느낀 L은 전화기에 침을 속사포로 쏴가면서 대꾸했다.

“미국에서 사고라도 나면, 당신들이 보상해 줄 겁니까?”

결국, L은 남은 보험금을 환급받게 되었다.

이런 거절, 저런 거절, 갖가지 거절을 두루 섭렵한 L은 더이상 두려울 게 없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국내 메이저급 보험사를 상대하는 것도 이제는 마냥 어렵지 않다. 눈에 쌍심지를 켜고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로, 원하는 바를 이루어 내고있다. 원하는 게 있다면, 싸울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멱살이라도 잡아야 한다. (반대로 때에 따라, 발목이라도 잡아야 할 일도 있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어내고자 하는 진심과 열의는 필요하다.

어쨌든, L은 지금 이 순간 온세상을 다 가진 듯 아주 행복하다. 그리고 기름진 사천style 볶음밥 생각에 벌써부터 배가 부르고 등이 따시다. 기분 좋은 저녁이다.

Thai Fried Rice
작성자: 이정도

현실은 누구에게나 관대하지 않다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면서 정말이지 많은 사람을 만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야심찬 계획을 듣고 보이는 반응은 제각각 이었는데, 참으로 감사하게도, 젊은 사람들치고는 멋진 꿈과 계획을 가지고 어려움을 헤치고 도전한다는 것에 꽤나 후한 점수를 주시는 분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당신의 20대는 우리의 20대와 같지 않았다며, 우리의 젊음, 꿈과 도전, 그리고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고야 마는 우리의 용기에 크게 감탄하시곤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젊디 젊었던 20대 시절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말씀해주셨다.

 

“나는 니들 나이 때, 밤마다 나이트에 가서 오늘은 누구를 꼬셔볼까 하는 생각 밖엔 없었는데 말이지…”

“나는 군대를 다녀오곤 좋은 회사에 취직할 생각 밖에 하지 못했어. 그리고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매일 밤 책과 씨름했지…”

“나는 여행을 가고는 싶었지만 우리 어머니가 여권을 뺏어 버리시는 바람에…”

“우리 때만 해도 기껏해야 산이나 바다였는데…”

“모터사이클로 남미를 종단한다는 건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그런 남자들만의 로망일 뿐이었는데…”

 

땅이 꺼져라 긴 한숨을 섞어가면서 자신들의 철없던 지난 시절의 얘기를 실컷 들려주시고는, 결국 힘없이 스르르 일어나고서야 길었던 이야기는 끝이 나곤 했다. 결국 그 분들이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은 각자가 처했던 환경과 현실이란 것이 고단했고 팍팍했기 때문에, 2010년 지금의 LeeYong처럼 발칙하고 위대한 일을 벌려보지 못했다는, 그럴 생각도 하지 못했다는… 뭐 대개 그런 후회반, 부러움반으로 끝나는 결론이었다.

 

돌이켜보면 현실은 누구에게나 항상 관대했던 적은 없었다. 현실은 때로 우리의 발목을 잡았고, 때로 진흙탕으로 처박아 넣기도 했으며, 때로는 그렇게 좌절하고 있던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도 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렇게 녹록치 않은 ‘현실’을 타파하고 넘어서고자 하려는 내 안의 용기와 의지가 있느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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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누가 모르냐? 먹고사는게 제일 중요한데 뾰족한 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리석은 나는 여전히 답할 수 없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하고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얻은 작은 another lesson learned가 있다면, 환경이든 상황이든 사람이든 탓하기 이전에 치열하게 꿈꾸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결과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할 수가 없지만.)

 

지금까지 LeeYong&Partners가 발칙한 일을 하면서 얻은 또 하나의 위대한 배움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지극히 차갑고 현실적인 결론이었다. 무언가를 원할 때는 항상 그에 상응하는 것을 희생해야 했다. 소소한 일을 할 때는 딱 그 만큼의 노력이 필요했고, 위대한 일을 벌릴 때는 딱 그 만큼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것은 엄연한 자연의 법칙이었다. 바로 이것이 현실이었다.

 

무시무시한 현실의 법칙이 작용하는 이 시대에, 친구들이 취업을 하기 시작하고, 어떤 친구들은 빠른 결혼생활을 시작하고, 또 어떤 친구들은 학교라는 안전하지만 동시에 불안한 울타리 안에서 각자의 치열한 고민을 하고있다. 하지만 LeeYong은 누구에게나 관대하지 않은 현실 속에서 진짜 나다워 지고 싶었다. 그것이 불과 몇 개월일 지라도. 더 이상 남들이 하는대로, 남들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면서, 그게 맞다고 하니까 스스로 자위하면서, 소년의 내가 가졌던 원대한 꿈을 더이상 생매장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될 지는 누구도 모르지만, 우리 스스로를 위해, 우리 방식으로, 세상을 향해, 우주를 향해 another great leap forward를 내딛고 싶었다.

 

500원짜리 캔커피를 홀짝거리면서 해운대 해변을 바라보며 거친 태평양을 꿈꿨던 작은 두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작성자: 이정도, Daily Improvisando)

2010. 11. 16.

LYNP across the continent, across the universe

 

좀 더 많은 돈을 번 후에,

좀 더 많은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좀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좀 더! 좀 더! 좀 더!

 

당신의 꿈은 왜 항상 현실보다 뒷전인가?

당신의 현재는 왜 항상 당신의 미래보다 못한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가?

우리 모두 늙어가고 있다.

세상의 빛을 본 그 첫 순간부터 우리는 계속 늙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난 빛나는 검은 눈동자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노인이 되기 싫다.

난 빛나는 검은 눈동자와 뜨거운 가슴을 가진 청춘이 되고 싶다.

이 길이 곧 나의 길이니, 난 일말의 후회와 두려움 없이 내 길을 가고야 말겠다.

 

당신은 그저 뒷짐지고 나의 뒷모습을 지켜보라, 걱정어린 눈빛으로.

내 앞 끝없이 펼쳐진 대지와 하늘의 뜨거운 태양은 반가히 손 내밀테니.

그리고 내가 가는 그곳 모두,

나와 함께 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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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도, Daily Improvisando

2010. 11. 5.

포장작업

2010년 11월 5일 목요일, 화려한(?) 출정식을 마친 우리는 S&T모터스 공장의 포장센터에서 직원분들의 친절한 도움을 받으며 포장작업에 들어갔다. 프로젝트 진행 이후, 우리가 몰랐던 세계에 눈뜨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모터사이클을 배송하기 위해 우리는 여러 가지 루트를 통해 다양한 배송방법들을 알아보았다. 해외로 화물을 배송하는 방법은 두 가지 밖에 없다. 첫 번째는 항공운송이다. 배송에 걸리는 시간(1~2일)과 화물을 찾는 시간(통관 및 관련 서류작업 등)이 빠르고 간편한 반면, 운임이 매우 비싼 편이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개인 짐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초과되면 그 만큼 더 받아내려고 하는 항공사들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만만치 않은 추가운임도. 개인 수화물도 이런 상황인데, 대당 무게가 300kg이 넘고 포장 부피가 5m3에 달하는 모터사이클은 어떻겠는가. 헝그리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정도, 용현석 파트너는 당연히 항공배송은 더 이상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두 번째는 해상운송이다. 운임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지만, 배송에 걸리는 시간이 항공운송에 비해 느리고(부산발-LA행 기준 약 10일), 현지 세관 직원들이 개인화물을 취급하는데 서투르다 보니 통관에 추가적인 시간과 비용이 들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선택한 최적의 방법은 당연히 해운운송이었다. 시간이 약 10일정도 걸린다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쩌겠나. 그게 더 싼 걸!
다행히 S&T모터스 측과 얘기가 잘 되어서, 포장비용은 회사에서 전액 지원받고 해상운임은 자비로 부담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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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해상운송을 위한 화물포장은 매우 중요한 이슈였다. 포장이 잘못되면 현지에서 물건을 찾을 때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터사이클을 나무박스에 최대한 정확하고 단단하게 결박하는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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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양 옆과 위 쪽에 커다란 철제 수납박스를 탑재한 모터사이클이기 때문에 그 어마어마한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하게 포장을 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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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를 뜯어내고 프레임과 박스를 플라스틱 끈으로 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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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이 진행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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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와중에도 철저한 현장 저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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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작업을 열정적으로 도와주신 반장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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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작업이 끝나고 여유있게 담소중.

드디어 한고비를 넘겼다. 포장이 끝나기 무섭게 큰 트럭이 와서 부산항 인근의 창고로 우리의 모터사이클을 싣고갔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많이 줄었다. 지금까지 여러가지 부품을 장착하고, 가방을 제작해서 달고,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포장을 했다. 지난 3주간은 미친듯이 바쁜 나날들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충분한 수면?!

2010. 11. 1.

철제가방 및 프레임 제작

5개월간의 아메리카 대륙종단 모터사이클 여행에 있어서 모터사이클의 내구성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엄청나게 많은 양의 짐을 모두 수납할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다. 개인적인 옷가지와 노트북 등으로 끝나는 유럽배낭여행과는 분명 스케일이 다르다. 프로젝트 기획초기만 해도, 다 똑같은 여행이겠거니.. 짐도 뭐 그냥 대충 넣고 다닐 수 있겠거니.. 하면서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여행준비를 시작하면서 이 바닥의 필독서로 꼽히는 허민씨의 ‘낭만바이크’, 강세환의 ‘오토바이 세계일주’, 그리고 이완 맥그리거(Ewan McGregor)와 찰리 부어맨(Charlie Boorman)의 ‘이완 맥그리거의 레알 바이크(원제: Long Way Round)’ 등을 정독했다.
크게 봤을 때, 세 권 모두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바로 장거리 여행을 위한 충분하고 튼튼한 수납공간이다. 먼저, 가방은 비상급유통(1인당 1갤런짜리 생수통 2개씩)과 식수통(1인당 1갤런) 뿐 만 아니라, 무겁고 큰 부피를 차지하는 다양한 소모품과 스페어 부품 및 개인 짐 등을 모두 실을 수 있도록 충분히 커야 한다. ST7의 크기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공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1인당 좌우 사이드(550x250x350)측 가방 2개와, 탑(550x350x350)측 가방 1개씩(모두 6개의 가방)을 직접 제작하기로 했다. Givi 같은 유명 기성 제품들이 있기는 하지만 가격대가 매우 부담스럽고, ST7의 프레임에 고정시킬 수 있는 ready-made 브라켓 또한 시장에 나와있지가 않아서 기성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일찍이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두 번째로, 수납공간은 튼튼해야 한다. 남미의 도로환경은 판 아메리칸 하이웨이를 제외하고는 열악한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말은,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말끔하게 포장되어 있어야 할 공도가 갑자기 오프로드로 바뀌기도 하고, 작은 요철과 멕시코의 전설적인 과속방지턱 등의 이유로 차량이 의도치 않게 전도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보기에는 단순했다. 하지만 시장에 있지도 않는 가방을 치수를 제면서 직접 제작한다는 것은 실제로 꽤나 복잡한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LeeYong은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며 수많은 나날을 서울 성수동과 청계천, 부산 사상 인근을 하루 종일 뛰어다녀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가 가방과 프레임을 제작한 곳은 부산 주례동의 어느 공장이었다. 원래는 전기분전반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이다보니 작은 가방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가방과 모터사이클을 튼튼하게 고정시킬 수 있는 프레임을 제작하는 것은 또 다른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것도 그런 것이, 모터사이클의 구조와 특징에 문외한인 ‘박스’ 엔지니어가 모터사이클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보통 수고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정도 파트너 아버지의 큰 도움을 받아 정확한 치수와 설계도면을 훌륭하게 완성하고 제작에 착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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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순정 브라켓을 최대한 활용하기로 하고 위와 같은 프레임을 만들었다. (물론 공장 엔지니어분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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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볼트와 너트 체결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하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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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시는 이정도 파트너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