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31.

Highway 1

Highway 1은 캘리포니아의 해안도로로 우리나의 7번 국도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오늘의 포스팅은 교훈과 재미를 떠나 단순한 자랑질. 으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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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주행에 앞서 기름을 가득 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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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way 1 진입 전, 들판에 잠시 정차를 했다. 도로변은 목장인데 진짜 소들이 엄청엄청 많다. 얼마나 많냐하면 내가 태어나서 먹은 소들과 정도가 태어나서 먹은 소들이 다 같이 모여서 자기 아는 친구들 다데리고 온 것 보다 더 많다. 바람소리는 음메음메 바람냄새는 소똥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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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이 살아있는 고려대학교 호랭이. 어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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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Highway 1으로 진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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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 사진 좀 찍어 주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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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기업가 인터뷰는 컨택하고 > 산업, 회사 리서치하고 > 질문 개요 정리하고 + 영어까지 해야하니까 은근히 워크로드가 많다. 하지만 모터싸이클 타는 건. 마냥 좋다. 풀 스트로클 그것은 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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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출발 전에는 Motorcycle과 Entrepreneur라는 Logically 어울리지 않는 조합에 대해 걱정도 많았다. 주위에서도 아무 공통점 없는 두가지 컨텐츠가 어떤 방식으로 엮일 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공통점이 왜 없니? 둘 다 우리가 너무 좋아하잖아. 멋진 기업가 횽아들도 만나고 모터싸이클로 대륙도 달리고. 정도랑 나랑 환호성 하고 신나서 난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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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릉부릉 부릉부릉 부릉부릉. 빠라바라밤.

구세주! 조성문님을 만나다.

2010년 12월 17일

한국에 있을 때 부터 Bay area의 재미난 소식들을 접하기 위해 전문가들의 블로그를 RSS로 받아봤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블로그가 있다면 조성문님의 블로그이다. 정말이지 왠만한 책이나 보고서 보다 질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고 그냥 똑똑함이 뚝뚝 묻어나는 블로그라고나 할까. 특히나 네이버가 가진 문제점과 이로 인한 한국 웹발전의 퇴보를 지적한 포스팅은 필독.

성문 형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Gamevil의 창업멤버 였고, UCLA MBA를 마치고 현재 Oracle에서 Product Manager로 일하신다. Entrepreneurship과 Career Development 모두에서 배울 점이 많은 분이라 Bay area에 도착하자 마자 Oracle본사로 찾아갔다. 비가 와서 카메라에 담지는 못했지만  호수를 둘러싸고 건물이 배치된 Oracle 본사는 정말 쾌적했다.

우선 형님과 함께 본사 카페테리아에서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다. 형님은 꼼꼼하게 우리 블로그를 다 읽고 오셨는데 좋은 도전을 하고 있다며 칭찬해 주셨다. 요즘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에 똑똑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매너가 좋고 심지어 잘생긴 경우까지 많다. 성문형님은 블로그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지식과 글솜씨 처럼 말씀도 재미나게 잘 하셨다. 허걱. 정도야 우리는 어뜩하냐.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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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실리콘 밸리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Bay area에도 한국인 엔지니어들이 많이 있고 이들이 Bay area K Group이라는 모임도 갖고 있다. 성문형은 거기서도 COO를 맡고 있고, 강연도 진행하셨다. 외국인으로써 Bay area에 자리 잡는 것은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문화와 언어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자신만의 전문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성문형은 학부를 졸업하고 Gamevil에서 Start-up으로 career를 시작했다. 지금은 엔지니어 경력과 MBA를 모두 활용할 수 있는 Product manager를 맡고 계신다. 형은 항상 마음속에는 기업가 정신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지금도 이곳에서 창업 기회를 찾고 있다고 한다.

 

질문. Gamevil에서의 경험을 얘기해주세요.

어떤 조직이든 최초의 멤버는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다. Gamevil 또한 처음부터 모바일 게임을 생각하고 만든 회사는 아니었다. 하지만 우수한 사람들이 모여서 팀을 꾸렸고 당시 막 형성되기 시작하던 모바일 게임시장에 진출했고 지금은 한국 모바일 게임의 대표 기업이 되었다.

Good to Great에서의 명언처럼 First Who, Then What. 그래서 창업을 꿈꾼다면 지금 당장 팀을 꾸려서 시제품을 만들라고 조언해 주셨다. 인간의 욕구가 무한한 만큼 사업기회는 언제나 주위에 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팀을 꾸린다면 사업모델과 기회는 언제나 생긴다고.

상경계열 전공으로 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점이 아쉽다고 말씀 드렸더니, 지금이라도 간단한 코딩을 배우라고 했다. 어짜피 엔지니어를 고용하더라도 컴퓨터 언어의 구성을 알아야지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고. 자신이 얼마나 똑똑하고 바른 태도를 가지고 있냐가 중요하지 전공은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세상에서 사람의 머리로 배우지 못할 일은 없으니까. 형 또한 똑똑함과 자신감이 철철 넘치는 멋진 사람이었다.

 

맛난 점심을 함께 하고 회사를 구경한 뒤, 다음에  Mountain View에 있는 성문 형 집에 몇일 간 머무르기로 했다. 형도 마침 연휴를 맞아 여행을 가시니까. 1월 초에 형님이 여행 마치고 돌아오시면 더 많은 얘기도 나누고 기업가들도 소개받기로 했다. 아 이토록 감사할 때가. 형님 고맙습니다.

이영훈 대표님 이야기

2010년 12월 14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L.A. 일정을 몇일 남긴 상태에서 Master Image 3D의 이영훈 대표님을 만나러 Hollywood에 있는 본사를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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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Image 3D의  입체 안경을 착용하고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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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훈 대표님도 배기홍 형님의 소개로 만날 수 있었다.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갖고 계신 분이라고 반드시 만나보기를 추천해 주셨다. 대표님의 첫인상이 다정하고 친절했다.

이영훈 대표님은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LG전자에서 근무하셨다. LG전자에서 신사업을 발굴하는 부서에서 일하셨고 그 과정에서 3D 디스플레이에서 산업에서 기회요소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2004년 부터 사업을 준비했다고 한다. 2006년 부터 헐리우드에서 3D 영화의 움직임이 있음을 느끼고 Paramount나 Disney같은 회사를 상대로 제휴가 시작되면서 현재는 한국에서 연구개발과 생산을 맡고 미국에서는 마케팅과 판매를 담당하는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했다.

 

질문. 힘들었던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세요.

회사를 그만두고 조그만한 사무실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3D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주위의 만류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새로운 기술이 재미있었고 시장성을 느꼈기 때문에 과감하게 추진했다고 한다. 부드러운 미소 속에서 대표님의 강인한 의지가 돋보였다.

3D 영상장비를 제작해 우선 국내 CGV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국내 업체로써 품질에 대한 증명이 필요했기 때문에 극장이 문닫는 2시가 되면 직원들과 함께 텅빈 상영관에서 제품을 테스트했다고 한다. 극장에서 조조할인 영화가 시작되는 아침이 되면 다시금 사무실로 와서 일 했다고 한다. 힘들게 극장 측에 제품을 판매했는데 또 문제가 생겼다. 디즈니 영화의 배급사에서 국내 업체를 믿을 수 없다고 극장 측에 문제를 제기한 것. 디즈니 측의 직원이 와서 직접 영상의 품질을 확인하고 서야 Master Image 3D의 영상 장비로 상영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해외 시장 진출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당시만 해도 영상장비는 미국이나 유럽업체가 거의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헐리우드에 진출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도 꾸준한 노력과 뛰어난 제품 덕분에 홍콩에 수출이 시작되고 지금은 유럽, 인도, 북미등의 다양한 국가에 수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RealD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질문. 직원들은 힘든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습니까?

이영훈 대표님 자신도 1년 넘게 월급을 가져가지 못하는 동안 직원들 또한 8개월 넘게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갔던 리더로써의 고민들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대표님만의 비법은 항상 직원들과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이영훈 대표님의 의사결정 방식 덕분이었다. 산업 관계자들과의 미팅도 늘 직원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사장부터 직원까지 모두가 이 시장이 곧 열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리더로써의 솔선수범도 중요했다. 급여도 사장이 먼저 희생하고, 아침에 제일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까지 근무했다고 한다. 연구 개발이든 허드렛일이든 대표님이 먼저 앞장서서 진행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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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한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미국에서 운영하는 것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미국이 훨씬 유리하다고 한다. 처음에는 한국에서 투자유치를 시도했으나 번번히 실패했다고 한다. 국내의 조그만한 벤쳐업체가 헐리우드 영상장비를 제작한다고 하니 20억, 30억의 투자 유치도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 투자 유치를 하려고 하자 기술력과 제품을 알아본 미국의 VC들은 단번에 170억원 상당의 투자를 받았다고 한다. 2009년 말에 미국의 투자유치를 받아 미국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 회사를 인수했다고 한다. 이후로 영화 아바타의 성공으로 1000억원 상당의 매출을 달성했다고 한다.

하지만 반면에 한국에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상당한 비용 절감과 빠른 업무진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보험과 세금 등 회사 운영에 필요한 자금이 많고, 인건비도 비싸기 때문에 한국 기업이 비용 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한다. 더욱이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야근도 불사하는 한국의 조직문하고 경영자 입장에서는 미국에서는 느끼기 힘든 강점이라고 한다.

결국 Master Image 3D는 한국에서 저렴한 비용과 빠른 업무 프로세스로 연구개발과 생산을 하고, 미국에서 큰 규모의 투자금을 받아 글로벌한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두 시장의 매력적인 면을 동시에 취할 수 있는 것이 회사 성장에서 큰 이점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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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대표님의 젊은 시절이 궁금합니다.

한참 동안 대표님께 제품과 관련된 기술소개를 듣고 나니 대표님 전공이 경영학이라는 것이 신기 했다. 이영훈 대표님은 어릴 때 부터 수학을 좋아하고 중학교 때 부터 청계천에서 컴퓨터 부품을 사서 혼자 조립하는 이과적 성향이 돋보이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도 이과 공부를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학력고사의 실패로 대학 진학에 재수하게 되었고 그때 문과로 바꾸는 바람에 경영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

졸업 이후 LG 전자에 들어가서 신사업 기획부서에 일하게 되었다. CTO 산하에서 신규 기술을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술을 보유한 업체를 인수, 합병하는 부서였다. 그 당시에 새롭게 주목 받던 PDP기술, Digital TV기술 등을 연구하고  일본, 미국 등으로 출장을 다녔다고 한다. 원래 새로운 기술을 좋아하다 보니 그런 일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거기에 전념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한 경험들을 거친 상태에서 3D 기술을 가진 작은 회사를 방문하게 되었고 2001년 중반에 처음으로 3D 영상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부터 기술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관련 기술의 특허들을 모두 검색해서 확인하고 개념도 이해했다. 이 때의 공부는 사업진행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사업초기에는 전문 엔지니어를 고용하기 힘들어서 이영훈 대표님이 직접 연구개발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5000만원의 초기 자본으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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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대기업에서의 직장 경험이 사업이 어떤 도움이 되셨습니까?

이영훈 대표님이 사업에서 활용하는 지식과 경험은 모두 LG에서 배운 것들이라고 한다. 특히 본사에서 근무하다 보니 다양한 부서의 업무 진행을 살펴 볼 수 있었고, 의사결정의 process를 옆에서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아무것도 쓸 수 있는 것이 없고, 학교 생활은 좋은 친구를 만나고 전공 학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는 과정이라고 한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큰 회사에서의 근무 경험이 개인사업의 성공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다.

 

질문. 미리 유망한 사업을 알아보시는 통찰력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유망 분야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사실 시작 부터 이 분야가 유망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고 하셨다 다만 3D 영상이 너무 신기하고 만들어 가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작했다. 언론에서 유망 분야라고 선정되고 국가적으로 이를 육성한다고 하면 이미 그 분야에서는 기회를 찾기 힘들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정말 재미있어서 취미처럼 할 수 있는 분야를 찾는 다면 거기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을 것이고, 기회는 언제든 올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표님은 낮에는 사무실에서 밤에는 극장에서 일하면서도 지겹다거나 힘든 줄 모르셨다고 한다. 자신의 좋아하는 일에 전념하라. 평범한 교훈을 다시금 되새기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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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온화한 미소 속에 강인한 의지와 열정을 가진 외유내강의 리더쉽이 느껴졌다. 더욱이 나와 같은 전공인 한국인이 미국 Hollywood에서 글로벌한 기업을 키워나간다는 사실에 더욱 자극이 되었던 하루다. IPO해서 상장하면 무조건 주식사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영훈 대표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0. 12. 30.

욕구1: 밥집, 술집, 그리고 모텔

12/30/10, THU

오늘도 똑같은 학교 수업이 마친 늦은 오후, 새싹 같이 파릇파릇한 어느 청춘은 갈 곳이 없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자니 시험기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무엇보다도 피 끓는 청춘이 산들바람이 불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날에, 칙칙한 도서관이 왠말이랴. 하지만 어른들처럼 등산을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20대라는 자신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등산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미드에서 본 것처럼,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서 책이라도 볼까? 남들이 허세라고 욕하지는 않을까? 아 참, 들고다니는 책이 없구나. 무엇보다 캠퍼스의 푸른 잔디는 아프다면서 자기를 밟지 말란다. 허, 참.”

심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우리의 청춘은 며칠 전 친구가 얘기해 준 게임이 문득 생각나, 더 이상 별다른 생각도 해보지 않고 근처 PC방으로 향한다. 서쪽하늘에는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고, 오늘도 쿨하지 못해서 한없이 미안한 청춘의 하루는 그렇게 쓸쓸하게 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20대는 외롭다. 10대에는 부모님의 걱정어린 관심과 사랑으로, 나름대로 충분한 care를 받으면서 산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10대가 어느덧 20대로 들어서면서 세상은 등을 돌린다. 한없이 냉정하고 차가워진다.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더 많은 걸 요구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무엇이 바른 삶인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알아서 다 잘하기를 강요한다. 그렇게 세상은 청춘의 작디 작은 어깨 위에 커다란 돌덩이를 올려놓는다.

그런 우리 청춘들에게 부모님들은 때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편의점으로, 식당으로, PC방으로 쫓겨나듯이, “이름”이 아닌 “알바”라는 이름으로 불려가면서, 법으로 보장된 시간당 4천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그렇게 힘들여서 번 피 같은 돈과 부모님께서 주신 약간의 용돈으로, 청춘들은 친구들과 싸구려 밥을 먹고는 싸구려 술집에 간다. 상황이 허락하는 운 좋은 날이라도 되면, 청춘들은 여자친구와 모텔을 간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에서 결국 돈을 버는 건, 부모님도 아니요, 이 사회도 아니며, 21세기의 꿈나무 우리 청춘들은 더더욱 아니다. 밥집과, 술집, 모텔이 돈을 벌고 있다. 이만큼 20대는 외롭고 갈 곳이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것만큼 불편한 진실도 없다. 누구든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남이 해결해 줄 거라며 끝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나이는 어느덧 20대 후반. 나이 30을 바라보는, 20대의 끝자락에 다다른 청춘은 이제 조금 세상과 화해 아닌 화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 그냥 남들처럼 열심히 살다보면, 성실히 일하다 보면 결국 좋은 날이 오겠지.”

우리의 청춘은 이제 어엿한 회사에 취업해서 미루고 미뤄뒀던 부모님께 작은 효도를 하기도 했다. 귀여운 여자친구도 생겼다. 낯설기만 했던 직장에서 상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작은 성취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여자친구와의 사랑은 하루하루 깊어가고 있다.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자친구와 1주년 기념으로 동해바다에 놀러 간다. 친구들과 가던 싸구려 술집은 어느덧 옛날 얘기가 되고 있다. 직장 상사들이 성과를 칭찬한다. 여자친구와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통장 잔고는 늘고 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사과 한 박스를 보낸다. 종종 여자친구 부모님과 식사를 한다. 직장에서는 곧 대리로 승진한다. 세상이 내 것만 같다. 온 세상이 내 앞길을 축복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삶이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행복하다. 청춘은 드디어 행복하다.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30대 초반의 청춘은 이제 가정을 꾸리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싶어한다. 부모님께 손자를 안겨드리고 싶다. 여자친구도 청춘을 사랑한다. 청춘이 아니라면 안 될 거라고 한다. 행복하다. 청춘은 드디어 행복하다.

그런데 이게 왠걸. 내 것만 같던 세상은 다시 청춘에게 배신을 때린다. 이보다 더한 배신은 없었다. 날 축복해주던, 봄날의 햇살 같던 따뜻한 세상은 다시 청춘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잡았던 손을 뿌리치더니 세상은 청춘을 그렇게 차갑게, 냉정하게 떠나고 있다.

서울 시내 미친 집 값은 청춘을 울린다. 전세값도 청춘을 울린다. 전세금 대출을 받으려고 찾아갔던 은행 PB도 청춘을 울린다. 그러면서 펀드 하나 가입하라며 청춘을 다시 울린다. 월세를 살자니 보증금이 청춘을 울리고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청춘을 또 울린다. 청춘은 운다. 청춘은 슬프다.

여자친구는 기다려주겠다고 얘기한다. 착한 친구다. 하지만 청춘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며 자책한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자신의 무능함 때문인 것처럼. 그러면서 20대때 자신의 어렸던 청춘을 원망한다. 더 좋은 학교를 가진 못한 자신을 원망한다. 더 좋은 직장에 가지 못한 자신을 원망한다. 부자 부모님을 갖지 못한 자신을 원망한다. 부모님을 원망한다. 사회를 원망한다. 세상을 원망한다.

원망하고 원망하던 청춘은 이제 지쳐간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욕구를 발견한다. 이 땅 모든 청춘들의 욕구를 발견한다. 멋지지만 저렴한 집에 대한 욕구.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신의 아담한 집. 부끄럽지만 가끔 부모님께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할 수 있는 자신의 아담한 집. 결혼을 앞둔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멋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신의 아담한 집. 청춘은 작지만 자신의 집을 원한다. 그리고 다른 청춘들도 자신의 집을 원함을 알게 된다. 청춘은 결심한다. 이 땅의 모든 청춘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저렴한 집을, 청춘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말겠노라고.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세상에게 배신 당하지 않게 하겠노라고.

30대 초반. 청춘은 기업가가 되기 위한 첫 발을 내딛고 있다. 어떻게 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청춘의 의지는 확고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청춘의 용기는 강인하다. 세상은 여전히 냉정하지만, 청춘의 도전은 아름답다.

청춘의 청춘은 그렇게,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Take the first step with faith. You don’t have to see the whole staircase. Just take the first step.” – Martin Luther King Jr.

 

작성자: 이정도

2010. 12. 27.

횡단에서 종단으로

12/26/2010, Sun

 

미국 LA부터 뉴욕까지. 언젠가 한 번은 북미대륙을 횡단해 보는 것이 내 꿈이었다. 비행기로 5시간이나 걸리는 꽤나 긴 여정을, 언젠가는 모터사이클로 횡단해 보는 것. 지금 생각해 보면 구체적인 동기나 이유 같은 건 없었다. 단지, 엄청난 규모의 미 대륙을 내 손과 발로 끝에서 끝까지 가보고 싶었을 뿐.

이번 모터사이클 여행을 계획하면서 처음부터 용현석 파트너와 뜻이 맞았던 건 크게 세 가지 였는데, 모터사이클, 기업가를 만나는 것, 그리고 북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고 중남미를 종단하자는 꽤나 멋진 계획이 그것이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횡단하고 종단하면서 멋진 기업가들을 만나자. 원대한 계획임이 틀림 없었고 이 계획이 단순히 계획으로만 그칠 게 아니라 현실로 이루어지길 간절히 원했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진행 중 fundraising은 좀처럼 쉽지 않았고 그러면 그럴 수록 우리의 출발 날짜는 하루하루 늦춰지고 있었다.

무겁기만 하던 2010년 여름은 그렇게 우릴 외면한 채, 어느덧 가을이 오더니 결국 초겨울이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출발일자가 11월 30일로 정해지면서 애초에 9월초 출발을 목표로 삼았던 우리는, 루트 계획에 큰 손질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한다. 일단 겨울에 모터사이클을 운행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60, 80, 100km/h… 주행 속도가 빨라지면 빨라질 수록 주행풍은 더 거세지고, 더 추워진다. 무엇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기 시작하면 그 때는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주행해야 하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우리가 애초에 계획했던 북미대륙 횡단 루트는 미시건 주와 메사추세츠 등, 겨울이 춥고 길기로 손꼽히는 곳이 많았기 때문에, 출발일자가 늦어질 수록 불리한 조건일 수 밖에 없었다.

“뉴욕을 포기하자.”

생각보다 결정은 쉽지 않았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고 무엇보다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는 건 우리 모두 인식하고 있는 바였다. 그래도 내가 가졌던 원래의 계획을 포기하는 건,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대륙 횡단의 로망. 대륙 횡단이라는 위대한 도전. 어쩔 수 없지만,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는 것 같아서, 올해 뉴욕은 예년보다 더 춥고 많은 눈이 예상된다는 기사를 보고는 화가 났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눈보라를 헤치면서까지 뉴욕을 갈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대륙의 끝에서 끝까지라는 우리의 로망과 꿈도, 그 순간 현실 앞에서 작아지고 있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한없이 무력감을 느꼈다. 하나 둘 나이를 먹어가면서, 세상이 정의하는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을 계속 간직한다는 건 생각했던 것 만큼 쉬워 보이지 않는다.

삶은 우리를 마냥 편안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는다. 때로는 계획의 크고 작은 수정을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계획 자체를 무산시키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굳은 원칙으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으며, 물 흐르듯이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가 지금 알고있는 IBM의 모태는 뭐였을까? 네트워크 서버? 소프트웨어? IT 컨설팅? 틀렸다. 그 때는 컴퓨터가 있지도 않았으니까. 1911년 International Time Recording Company, Computing Scale Company, Computing-Tabulating-Recording Company 등 세 회사의 합병으로 출발한 이 회사의 당시 주력 제품은 직원들의 출퇴근 기록카드에 구멍을 뚫는 자동 펀치기계였다.

 

IBM Logo Evolution

IBM Logo’s Transition over the Century (Image source: http://www.myicore.com/post_pics/ibm_logo_evolution.gif)

 

재밌지 않은가? 세계 최대의 컴퓨터 회사인 IBM의 시작은 자동 펀치기계였다니. 1992년 Thinkpad 노트북 라인업을 갖추기도 하고(후일 Levono에 매각되기는 했지만) 2002년에는 PricewaterhouseCoopers의 컨설팅 부분을 매입하기도 한다. IBM과 세계 최대 회계법인의 만남이라.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기도 하다.

 

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mpany (C-T-R) meetingFactory in Endicott, New YorkWWII1970s RainbowIBM PC IBM System z9 mainframe

History of IBM at a Glance: Image source (http://www-03.ibm.com/ibm/history/history/decade_1900.html)

 

자동차 매니아라면 꼭 한번 갖고 싶은 차. 페라리. 100년이 넘는 전통을 갖고있는 이탈리아의 명문 페라리이건만 이젠 페라리 옷도 팔고, 페라리 향수도 팔고, 페라리 선글라스도 판다. 이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페라리 = 명품 자동차 메이커’라는 단순한 등식에서 ‘페라리 = 명품 everything 메이커’로 바뀌고 있는 건가? 매출 증대를 위한 또 다른 수익 채널로 이해해야 하는 건가?

(Ferrari Store, Image Source: http://www.luxuo.com/wp-content/uploads/2010/06/newyork-ferrari-store.jpg)

페라리 로고만 없으면 단순 재화에 불과한 것들이, 페라리의 프리미엄이 붙어서 그런 지 몰라도, 비싸게 팔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보다 더 많은 돈을 주고 페라리의 근육질 말 로고가 큼지막하게 찍혀있는 물건을 사고 있다. 어쨌거나, 사람들은 돈을 쓰고있고, 페라리는 돈을 벌고 있다.

 

DSC_0063@Ferrari Store, San Francisco

 

결국 그렇게, 아메리카 대륙 횡단에서 종단으로. 우리의 계획은 바뀌었다. 세상이, 환경이 변하면서 사람들의 욕구 또한 변하게 마련이고,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업 또한 변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는 기업. 내 안에 자리잡은 변화에 대한 강한 심리적 저항과 두려움을 깨는 기업과 사람은 미래가 두렵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男男老小 세상에 만고불변의 원칙이 있었으니, 그건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남자들의 세대를 초월하는 로망이다.

DSC_0050DSC_0051DSC_0052용현석 파트너의 “혀 낼름” @Victoria’s Secret, San Francisco.

껄떡거리는 우리에겐 빅토리아가 진리.

 

작성자: 이정도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12/17/2010, Fri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샌프란시스코에 다 와가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갈 곳이 없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 일기예보와는 달리 갑자기 비는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고, 짙은 안개 때문에 50m 앞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저녁시간인데다, 온도차이 때문에 헬멧 실드에는 김이 뿌옇게 끼여서 앞도 잘 보이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실드를 열고 주행하자니 찬 빗방울이 얼굴을 때렸다. 한마디로 주행을 하기에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 마땅한 숙소도 정해놓지 않고 지루한 고속도로를 달리던 우리는 무엇보다도 갈 곳이 필요했다. 비를 잠시라도 피할 곳이 필요했다.

 

그리곤 길가의 어느 햄버거 가게 앞에 잠시 모터사이클을 멈췄다. 어딜 가야하나. 이 늦은 시간에 누가 우리를 재워줄 것인가. 정 안되면 남자 두 명이서 모텔이라도 가야하는 므흣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될 수 있으면 그 비용도 아끼고 싶었다.

 

그래. 교회를 가자. 출발할 때 준비해왔던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한인교회 리스트를 살펴보곤 현재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어느 교회의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찍었다. 그리고 지체없이 빗 속을 뚫고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는 대책이 있었나? 그냥 부딪히는 거지. Improvisando. 대책없이 즉흥적으로. 그게 바로 우리의 철학이니까. 설마 우릴 쫓아내기야 하겠어?

 

정말 쫓겨날 뻔 했다.

 

늦은 저녁 교회에 도착하고 나서 빼꼼히 두꺼운 현관문을 열고는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가 마침 다음날 예배준비로 한창 바쁘시던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한국에서 온 대학생들이고 모터사이클을 타고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하고 있습니다. 염치없지만 밖에 비도 오고 하니 하루만 좀 재워주십시오.”

 

적잖이 당황하시면서, 외부인을 재워주지 않는 것이 교회의 규정이니 마을에 있는 게스트하우스나 모텔을 찾아보라고 하시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시는게 아닌가. 부끄러웠다.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만가지 거절을 다 당했던 우리였고 거절에 대한 나름의 면역도 생겼다고 믿었던 우리였는데, 그 순간 만큼은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린 너무 절박했으니까. 지금 다시 나가서 새로운 숙소를 찾기에 시간은 이미 늦었을 뿐더러 무엇보다도 우리는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

 

‘지금 이 시간에 어딜 가서 숙소를 찾는단 말이야? 다른 교회를 찾아가야 하나?’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찰나, 목사님은 어느새 따뜻한 커피를 내오셨다. 아, 이게 얼마만이냐. 머나먼 남미, 태양이 이글거리는 그곳에서 온 짙은 구릿빛 피부의 당신은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요 구원이구나! 용현석 파트너는 진한 커피 한 잔에 다시 기운을 차리고 목사님께 다시 한번 간청했다. 차가운 마룻바닥이라도 좋으니, 추운 차고라도 좋으니, 제발 오늘밤만 재워달라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고백하건대, 난 기독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나마 구약을 공부했던 건, 대학생 시절 ‘서양철학’이라는 한 학기짜리 필수교양 수업 때 뿐이었다. 기본적으로 그 과목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은, 성경은 과학적/이성적 분석의 영역에서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들이 분명 있고, 따라서 성숙한 지성인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모든 걸 당연시 받아들이기보다 그 전에 독립적인 분석적 사고를 키우라는 것이었다.

 

어쨌거나 그 동안 나는 기독교인들의 극단적인 폐쇄성과 배타성, 그들만의 독선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과 “봉사”라는 아름다운 본질을 왜곡하고 훼손하고 있다고 믿어왔다. 외국인들로 가득한 인사동 차 없는 거리에서 “No Jesus, Go Hell”이라는 섬뜩한 벌건 색 포스터를 가슴팍에 안고 예수를 믿지않는 자, 지옥에 떨어질 것이라며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는 극히 일부의 기독교인들이 마치 기독교의 전체를 대변이라도 하는 냥 생각했었다. 또한 정신세계 만큼은 아직도 20세기에 머무르고 있는 한국 기독교가 가진 공격적인 포교방식에 혀를 끌끌차면서도, 훈련병 시절 부자교회에서 주는 치즈버거가 가난한 절에서 주는 초코파이보다 더 좋았던 나였다.

 

따뜻한 교회 방바닥에 누워있으니, 일부 기독교인들의 폐쇄성과 배타성, 독선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내가 가진 폐쇄성과 배타성, 독선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히 일부의 모습을 보고 전체를 판단했던 어리석었던 나. 변변찮은 지식으로 기독교의 2000년 역사를 마냥 부정하려고 했던 나.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논리적이라며, 차분히 앉아서 얘기조차 들어보려 하지 않았던 나.

 

내가 욕했던 기독교의 모습들은 결국 내가 가진 모습이었다. 결국 내가 문제였다. 그들이 그르게 보인 건, 내가 그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어리석게 보였던 건, 내가 어리석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 문제였다.

 

어쨌거나, 난 이제 금요찬양예배를 드리러 가봐야겠다. 따뜻한 잠자리를 선물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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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정도

LA to San Francisco

우리는 원래 LA지역에서 주중에 많은 인터뷰를 다 끝내놓고 주말에 여유있게 샌프란시스코로 올라가려고 했었다. 이곳에서 꽤 유명한 Highway 1을 이용해서 깎아지르는듯한 절벽과 태평양을 굽이굽이 따라 올라가는 아름다운 길을 달리고 싶었고, 특히 소설 <백경>의 배경으로 나오는 Monterrey라는 곳도 들려 나름 늦가을의 향수를 한껏 즐기고 싶었다.

Big Sur Coast

(Highway 1: image source: http://www.bigsurroadhouse.com/media/Roadhouse-web/bigsurcoast-2.jpg)

애초에 Highway 1을 선택한 이유는 조금 더 복잡하다. 이번 여행에서 우리 계획은 될 수 있으면 고속도로 이용을 최소화하고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여유있게 지방 국도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Zen and the Art of Motorcycle Maintenance>라는 책에서 읽고 크게 공감했던 다음 부분이 잘 설명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대로 발췌한 것은 아니고 내가 읽었던 부분을 정리한 것이므로 실제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 Robert M. Pirsig은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주변 사물과 향취가 단순히 시각으로써만 존재하므로 나라는 존재와 내가 지나가는 주변 환경 사이에는 이질감과 괴리가 생기기 때문에, 모터사이클로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반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탈 때 느끼는 감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 반면 한산한 지방국도는 좀 더 느리고 시간이 더 걸리기는 하지만, 나와 주변 사물이 한껏 더 가까워지고, 그것이 단순히 쉽게 지나쳐버리는 ‘시각’과 사진기의 플래시같이 짧은 ‘순간’으로써 존재하기 보다, 내가 맘만 먹으면 실제로 발 딛고 설 수 있는 ‘실재하는 것’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결국에는 나와 주변을 나누던 거리는 짧아지고 어느 새 두 개의 개별적인 존재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지. 즉, 내가 주변 사물에 동화가 되고 길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딴 거 다 필요 없어졌다. 날씨 앞에서는 로망 같은 거 보이지가 않는다. 금요일부터 일주일간 LA와 샌프란시스코 모두 비가 온다고 하거든. 한산한 국도 위에서 내가 길이 되고, 길이 내가 되는 그런 선불교 같은 소리는 이제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비가 온다고 하니까! 우리가 가진 시간은 단 하루. 하루 만에 샌프란시스코까지 달려야 한다. 자동차로 가면 보통 6시간 반 정도가 걸리고 네비게이션은 7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우리의 경험상, 모터사이클은 자동차로 걸리는 시간의 두 배로 계산하면 꽤 정확하다. 햇빛과 강한 바람 때문에 쉽게 피곤해지기도 하지만 우리는 LeeYong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모터사이클보다 더 많이 먹어 줘야 한다. 어쨌거나 예상 시간은 12시간 가량.

 

처음엔 좋았다. 사진으로만 봤었던, 구글맵스에서만 봤던 옅은 갈색의 이국적인 산과 끝도 펼쳐진 들판, 그리고 소똥 냄새…모든 게 신기했고, 그것들을 단순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같이 호흡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끝없이 펼쳐진 어느 농장에 아메리칸 젖소는 족히 3000마리 이상 되어 보였다.)

 

달리고 또 달려 어느 덧 해는 뉘엇뉘엇 지기 시작했고, 직선으로 계속 북서쪽을 향해 달리던 I-5 고속도로에는 짙은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저녁이다. (우리는 이번 모터사이클 여행에 앞서서 나름의 주행원칙을 세워두었었는데 그것은: 첫째, 우천 주행 금지. 둘째, 야간 주행 금지. 셋째, 일정시간의 주행 이후 충분한 휴식 등이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한 지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우리의 주행원칙을 계속 어기고 있다.) 어두워도 어쩔 수 없이 달려야 한다. 어떻게든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해야만 한다. 옆차선에 큰 트레일러 트럭이라도 지나가기라도 하면, 가뜩이나 주행풍으로 피곤했던 우리는 트럭이 만들어내는 강한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핸들을 꽉 쥐어야만 했다. 점점 힘들어진다. 피로가 쌓이고 있다.

 

작성자: 이정도

2010. 12. 21.

Master Image 3D 이영훈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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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14일. Hollywood에 위치한 Master Image 3D 이영훈 대표님을 만났다.

회사의 제품군은 크게 두가지이다. 3D 영사기와 특수안경을 포함한 3D cinema system, 그리고 무안경 3D LCD.

우선 회사내에 위치한 작은 극장으로 가서 3D cinema system을 구경했다. 영화 아바타를 3D로 본 사람은 그 영상의 생생함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한 영상 시설이 갖춰지기 위해서는 극장 영사실에 특수 장비가 설치 되어야 하고 관객도 일회용 안경을 착용해야 한다. 이러한 영사 system과 안경을 생산하는 업체가 바로 master Image 3D이다.

우선 3D  영사 system을 이해하려면 기술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요하겠다. 우리가 사물을 입체로 인식하는 것은 좌안과 우안이 다른 각도에서 두가지 시각 정보를 인식하고 뇌가 이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쉽게 그림으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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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우리는 오른쪽 눈가 왼쪽 눈의 각도 차이를 이용해 3차원의 시각정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하나의 카메라로 촬영한 정보를 그대로 받아보기 때문에 2차원적인 영상을 접하게 되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보는 3D 영화는 어떤 방식으로 촬영된 것일까? 대부분의 위대한 발명이 자연의 원리를 모방해왔듯이 3D 영화도 두 대의 카메라를 통해 인간의 두 눈의 모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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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서 보듯이 두 대의 카메라로 촬영한 정보를 영사기를 통해 내보내고 특수안경을 통해 왼쪽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좌안으로 오른쪽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우안으로 전달한다. 그래서 안경없이 3D 영상을 보면 뿌옇게 화상이 겹쳐 보이는 것. 간단한 이론적 이해를 바탕으로 제품을 둘러보자. 본사에서 근무하시는 영상 엔지니어께서 직접 제품소개를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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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MI-2100 이라는 cinema system이다. 극장 뒤의 영사실에서 왼쪽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과 오른쪽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을 빠른속도로 바꿔가며 보내주는 장치이다. 역시나 실제 구동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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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영사기 앞에 장착한 모습. 구동 시 1초에 144번이나 회전한다. 쉽게 말해 선풍기 강풍보다 좀 더 빠른 속도. 이정도 속도로 작동해야 사람의 눈으로 어색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말에 놀란 이정도 파트너. 바퀴가 달려있어 이동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라고 한다. 경쟁사의 기존 제품들은 부착식으로 한번 설치하면 바꾸지 옮길 수 없는데 이는 영화상영의 특징 상 극장에게 큰 부담이 된다. 왜냐면 작품마다 인기몰이의 주기가 있고 그 순환에 따라 큰 상영관에서 작은 상영관으로 옮겨가야 하는데 그때마다 3D 영상 장비를 다 설치할 수는 없으니까. 역시 작은 차이가 경쟁우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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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님의 도움으로 내년에 개봉될 디즈니의 3D 야심작 TRON의 티져 영상을 관람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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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쓰고 있는 안경이 3D극장용 특수 안경이다. 안경 렌즈가 빛을 걸러내는 작용을 해서 수직방향의 빛과 수평 방향의 빛을 좌안과 우안에 따로 보낸다.평범하게 생긴 이 안경에 이토록 심오한 과학의 원리가.

한가지 재미난 것은 이 안경이 일회용이라는 것. 소비자 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이 쓴 안경이라는 찝찝함 없이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점. 기업 입장에서 일회용 재화는 상영될 때마다 매출이 쏟아지는 돈밭으로 보일테다. 안경 하나의 가격은 50 cent. 한화로 600원 정도. 정확히 공개할 수는 없지만 마진율 또한 상당했다.

얼마나 돈밭인지 간단히 계산해 보자. 최근에 상영된 3D영화 아바타. 서울의 한 극장에서 1개월간 3개 상영관에서 1일 5회를 상영했다고 하자. 1개 상영관의 관람 인원은 200명.

30일 * 3개 상영관 * 5회 * 200명 = 9000개

서울에 10개의 구가 있고 이런 극장이 구마다 5개 있다고 생각하면 서울에서 아바타가 인기몰이를 할 때 판매한 안경 개수만

9000개 * 10개 구 * 구마다 5개 극장 = 450000개

보수적으로 보수적으로 생각해도 3D 영화 한편이 인기몰이를 할 때 서울에서만 45만개의 안경이 필요하다. 영화는 전국적으로 상영되었고, 또한 전세계적으로 상영되었다. 아바타는 3D 영화의 시작일 뿐. 그래서 일부는 2D 상영관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물론 지금의 서울에는 3D 영상시설을 갖춘 극장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영화 제작사들의 3D영화 제작에 몰두하면 극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시설을 갖춰야 할 테고. 모든 극장에서 영사기와 안경을 필요로 할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 극장용 3D 영상 시장이 이제 막 독점을 벗어난 2개 기업의 과점 시장이라는 것이다. Master Image 3D가 제작에 뛰어들기 전까지 이 시장은 Real D 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었고 독점적 지위를 활용해 비싼 가격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었고 현재 Master Image 3D는 Real D의 시장 점유율을 바짝 쫓아가고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미국에서는 Real D의 입지가 확고하지만 유럽, 인도, 아시아 시장에서는 Master Image 3D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일단 영화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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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요. 허걱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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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요. 흙흙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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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요. 캬캬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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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을 나서며 감상에 젖은 이정도 파트너.

사무실로 돌아와 Master Image 3D의 또 다른 제품군인 무안경 3D LCD 스크린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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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회사에서 무안경 3D LCD를 소개하기 위한 대모 제품 실제로 보니 휴대폰만한 액정에서 안경도 착용하지 않고 3D 영상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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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LCD에 추가적인 패널을 부착하는 형태로 제작한다고 한다. 지금은 핸드폰 액정 크기로만 제작할 수 있지만 2013년에는 40인치 이상까지 제작할 계획이라고 하니 집에서 3D TV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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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Image 3D의 LCD를 활용해 만든 Hitachi의 핸드폰. 실제로 본 우리는 정말 신기함을 금치 못했다. 스마트폰에 이런 LCD를 장착하면 이건 정말 많은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지금도 회사에는 세계 굴지의 Device 제조 업체들이 거래를 위해 방문한다고 하니 3D 스마트폰의 도래도 머지 않았나 보다. 전세계 상영관 수는 어느정도 제약이 있다고 하지만 3D 액정 시장에서 주도권을 장악한다면 회사의 성장세는 엄청날 것 같다. 물론 경쟁구도가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3D 액정이 가져올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분들을 위한 간단한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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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Techcrunch에 소개된 Android 용 google maps.

source: TED

무려 3년 전인 2007년 Anand Agarawala가 TED에서 소개한 3D Desktop 프로그램인 Bump top.

이런 서비스가 곧 우리 손바닥에서 구현될 수도 있고, 그런 Device에 포함되는 LCD를 Master Image에서 공급할 수도 있다는 것.

와우. 그럼 이런 기술력을 가지고 Hollywood에서 입지를 굳혀가는 기업을 만든 이영훈 대표는 어떤 분일까? 다음 포스팅을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