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30.

욕구1: 밥집, 술집, 그리고 모텔

12/30/10, THU

오늘도 똑같은 학교 수업이 마친 늦은 오후, 새싹 같이 파릇파릇한 어느 청춘은 갈 곳이 없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자니 시험기간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고, 무엇보다도 피 끓는 청춘이 산들바람이 불고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날에, 칙칙한 도서관이 왠말이랴. 하지만 어른들처럼 등산을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20대라는 자신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등산은 힘이 들기 때문이다.

“미드에서 본 것처럼,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서 책이라도 볼까? 남들이 허세라고 욕하지는 않을까? 아 참, 들고다니는 책이 없구나. 무엇보다 캠퍼스의 푸른 잔디는 아프다면서 자기를 밟지 말란다. 허, 참.”

심심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우리의 청춘은 며칠 전 친구가 얘기해 준 게임이 문득 생각나, 더 이상 별다른 생각도 해보지 않고 근처 PC방으로 향한다. 서쪽하늘에는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고, 오늘도 쿨하지 못해서 한없이 미안한 청춘의 하루는 그렇게 쓸쓸하게 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20대는 외롭다. 10대에는 부모님의 걱정어린 관심과 사랑으로, 나름대로 충분한 care를 받으면서 산다고 느꼈었다. 하지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10대가 어느덧 20대로 들어서면서 세상은 등을 돌린다. 한없이 냉정하고 차가워진다.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더 많은 걸 요구한다.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무엇이 바른 삶인지 알려주지도 않는다. 알아서 다 잘하기를 강요한다. 그렇게 세상은 청춘의 작디 작은 어깨 위에 커다란 돌덩이를 올려놓는다.

그런 우리 청춘들에게 부모님들은 때로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편의점으로, 식당으로, PC방으로 쫓겨나듯이, “이름”이 아닌 “알바”라는 이름으로 불려가면서, 법으로 보장된 시간당 4천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그렇게 힘들여서 번 피 같은 돈과 부모님께서 주신 약간의 용돈으로, 청춘들은 친구들과 싸구려 밥을 먹고는 싸구려 술집에 간다. 상황이 허락하는 운 좋은 날이라도 되면, 청춘들은 여자친구와 모텔을 간다.

대한민국이라는 이 사회에서 결국 돈을 버는 건, 부모님도 아니요, 이 사회도 아니며, 21세기의 꿈나무 우리 청춘들은 더더욱 아니다. 밥집과, 술집, 모텔이 돈을 벌고 있다. 이만큼 20대는 외롭고 갈 곳이 없다. 인정하기 싫지만 이것만큼 불편한 진실도 없다. 누구든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남이 해결해 줄 거라며 끝내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나이는 어느덧 20대 후반. 나이 30을 바라보는, 20대의 끝자락에 다다른 청춘은 이제 조금 세상과 화해 아닌 화해를 하기 시작한다

“그래, 그냥 남들처럼 열심히 살다보면, 성실히 일하다 보면 결국 좋은 날이 오겠지.”

우리의 청춘은 이제 어엿한 회사에 취업해서 미루고 미뤄뒀던 부모님께 작은 효도를 하기도 했다. 귀여운 여자친구도 생겼다. 낯설기만 했던 직장에서 상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작은 성취를 만들어 내고 있다. 여자친구와의 사랑은 하루하루 깊어가고 있다. 월급은 꼬박꼬박 들어오기 시작한다. 여자친구와 1주년 기념으로 동해바다에 놀러 간다. 친구들과 가던 싸구려 술집은 어느덧 옛날 얘기가 되고 있다. 직장 상사들이 성과를 칭찬한다. 여자친구와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하기 시작한다. 통장 잔고는 늘고 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사과 한 박스를 보낸다. 종종 여자친구 부모님과 식사를 한다. 직장에서는 곧 대리로 승진한다. 세상이 내 것만 같다. 온 세상이 내 앞길을 축복하고 있는 것만 같다. 삶이 이대로만 흘러간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행복하다. 청춘은 드디어 행복하다.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30대 초반의 청춘은 이제 가정을 꾸리고 싶다.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결혼을 하고 싶다. 한 아이의 아빠가 되고 싶어한다. 부모님께 손자를 안겨드리고 싶다. 여자친구도 청춘을 사랑한다. 청춘이 아니라면 안 될 거라고 한다. 행복하다. 청춘은 드디어 행복하다.

그런데 이게 왠걸. 내 것만 같던 세상은 다시 청춘에게 배신을 때린다. 이보다 더한 배신은 없었다. 날 축복해주던, 봄날의 햇살 같던 따뜻한 세상은 다시 청춘에게 등을 보이고 있다. 잡았던 손을 뿌리치더니 세상은 청춘을 그렇게 차갑게, 냉정하게 떠나고 있다.

서울 시내 미친 집 값은 청춘을 울린다. 전세값도 청춘을 울린다. 전세금 대출을 받으려고 찾아갔던 은행 PB도 청춘을 울린다. 그러면서 펀드 하나 가입하라며 청춘을 다시 울린다. 월세를 살자니 보증금이 청춘을 울리고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청춘을 또 울린다. 청춘은 운다. 청춘은 슬프다.

여자친구는 기다려주겠다고 얘기한다. 착한 친구다. 하지만 청춘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며 자책한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자신의 무능함 때문인 것처럼. 그러면서 20대때 자신의 어렸던 청춘을 원망한다. 더 좋은 학교를 가진 못한 자신을 원망한다. 더 좋은 직장에 가지 못한 자신을 원망한다. 부자 부모님을 갖지 못한 자신을 원망한다. 부모님을 원망한다. 사회를 원망한다. 세상을 원망한다.

원망하고 원망하던 청춘은 이제 지쳐간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자신의 욕구를 발견한다. 이 땅 모든 청춘들의 욕구를 발견한다. 멋지지만 저렴한 집에 대한 욕구.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를 마시면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자신의 아담한 집. 부끄럽지만 가끔 부모님께 직접 만든 요리를 대접할 수 있는 자신의 아담한 집. 결혼을 앞둔 사랑하는 여자친구와 멋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신의 아담한 집. 청춘은 작지만 자신의 집을 원한다. 그리고 다른 청춘들도 자신의 집을 원함을 알게 된다. 청춘은 결심한다. 이 땅의 모든 청춘들이 쉽게 살 수 있는 저렴한 집을, 청춘 자신의 손으로 만들고 말겠노라고. 그리고 그들이 다시는 세상에게 배신 당하지 않게 하겠노라고.

30대 초반. 청춘은 기업가가 되기 위한 첫 발을 내딛고 있다. 어떻게 될 지는 아직 모르지만, 청춘의 의지는 확고하다. 쉽지는 않겠지만, 청춘의 용기는 강인하다. 세상은 여전히 냉정하지만, 청춘의 도전은 아름답다.

청춘의 청춘은 그렇게,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다.

 

“Take the first step with faith. You don’t have to see the whole staircase. Just take the first step.” – Martin Luther King Jr.

 

작성자: 이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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