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12.

손해를 본다는 것

내가 조금 더 손해를 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상대방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물질적 정신적인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고 어떨 때는 물질적 정신적인 이득을 본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는거다. 세상 일 이라는게 50대 50으로, 절대적으로 공평하지는 않다. 또 그러길 바라는 마음 또한 순진한거다. 내가 이만큼 해줬으니, 상대방은 그만큼 해줘야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커플이 깨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받던가.

이건 지극히 무서운 현실이라고. 무슨 말인고 하니,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수많은 관계에 얽혀져 살아가고 있고, 그 관계를 들여다 보면 상대방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감이 존재한다. 더군다나 가깝고 각별한 사이일 수록, 상대방에 대한 기대의 정도와 빈도가 더 커지게 마련인데… 문제는 이런 상대방에 대한 기대감은 너무 자연스러워서 때론 너무 당연시되기도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엄마는 아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책과 연필을 사주시고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길 바라시며 아들에게 무한한 기대감을 갖고 계신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보상은? 아들의 명문대 입학과 성공적인 취업이겠지. 아니면 친구 자식들과 비교해서 위너가 되고 싶은 마음? 반면 아들은 엄마에게 문제집 산다고 해놓고, 피씨방을 간다거나 독서실에서 만난 여자친구한테 줄 빼빼로 한 상자를 산다. 여자친구와 해피한 빼빼로데이를 보내고 집에 가는 길, 아들은 엄마가 야참을 준비해놨기를 기대하고 있겠지?

이런 배은망덕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엄마는 어떻게 네가 나한테 이럴 수 있어, 어떻게 엄마한테 거짓말을 할 수가 있냐면서 노발대발 방방 뛰겠지.

Couple-breaking에서도 마찬가지. 수많은 커플을 위협하는 수 만 가지 지긋지긋한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기대심리와 그에 따르는 보상심리 사이의 충돌이다. “내가 당신을 이만큼 좋아하니까, 당신도 나를 이만큼 좋아해 줘야 돼. 내가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은 날 진짜로 좋아하는 게 아니야. 우리 이제 헤어져.” 이런 망할. 이런 막장드라마 같은 못 되 먹은 장면은 현실에서도 충분히 가득하다고!

하지만 웃긴 건, 아들에 대한 무한한 기대감을 갖고 계시는 엄마나, 엄마한테 빌붙어서 조금이라도 더 용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아들이나, 무한충성을 요구하는 어린 커플 모두 잘못 된 건 없다는 거다. 결국 다 당연히 그런 맘이 들 수 밖에 없다는 거지. 엄마가 아들한테 기대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아들이 엄마한테 용돈 좀 더 받아내려고 애쓰는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서로에게 더 많은 걸 바라고 요구하는 커플도,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마음 아닌가?

결국 내가 생각하는 solution은 이렇다. 내가 조금 더 손해 보는 것. 남에게 더 많이 퍼 주는 것. 대가를 바라지 말고, 그냥 퍼 주는 게 좋으니까, 그런 내가 좋고 행복하니까, 상대방을 더 위하고 더 배려하는 것. 그게 결국 나를 위하는 길이니까.

 

JDL

댓글 1개:

  1. 오, 대단한데! 놀랍다. "이타심이 경쟁력"이라는 말이 있지. Jeremy Lifkin도 그의 근저 에서 인류문명은 공감을 통해 발전해왔고 특히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더 공감능력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진정한 이기주의자라면,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타주의자일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 지도층은??? 아, 대한민국!!! (배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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