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2. 7.

잘사는 나라 견문록

 

미국에 온지 오늘로 일주일이 되었다. 이전부터 주위에 미국빠돌이 빠순이들이 많았지만 솔직히 난 비판적으로 봐왔다. 그래 봤자 사람 사는 곳이 거기가 거기인데 그것도 다 미국허세 아니냐 하는 생각으로. 하지만 몇일 지나지 않았고 L.A.에만  있었다고 쳐도 사람 사는 것이 여기랑 거기랑 확실히 다름을 느낀다.

미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잘사는 나라, 힘있는 나라, 선진국이다. 이미 한국에서도 얘네들이 잘사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와서 보면 그 잘사는 느낌이 미묘하게 다르다.  한국에서 느꼈던 미국의 이미지는 멋진 수트를 입은 몸짱 횽아의 이미지. 올림픽 하면 운동도 잘해, 비싸고 이쁜 옷도 잘 만들어서 잘입고 다녀, 성격도 cool하고, 영도 잘하고, 군사력도 세고. 반면에 실제로 미국에 와서 느낀 좋은 나라의 이미지는 아침 일찍 테니스를 치는 할머니의 이미지이다. 말그대로 잘먹고 잘자고 잘입고 잘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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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를 감안하고 성급하게 일반화를 하자면, 미국사람은 의식주+놀이 에서 한국사람보다 삶의 질이 높다. 좋은 옷을 입고, 맛난 음식을 먹고, 아침엔 부부끼리 테니스도 치고, 공원산책도 한다.  내가 여기서 졸라 궁금한 건 전쟁을 겪고 근대화의 주역이라는 우리나라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종로3가에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여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왜 유기농 샐러드 먹으면서 테니스를 치고 있냐는 거다. 물론 여기가 부자동네고, 미국에도 슬럼은 있겠지만. 선진국 사람들이 삶의 질이 높은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잖아. 왜 우리는 초등학생은 영어 공부한다고 학교마치면 학원가고, 고등학교은 4시간 자면서 공부하고, 광화문 가득한 기업 건물에는 밤새 불이 꺼지질 않는데. 왜 얘들은 주말에 장사 안하고, 아침에 조깅하고, 저녁에 테니스 치면서도 더 맛난 거 먹고, 정원 딸린 더 멋진 집에서 살까? 장하준 교수의 최근 저서에는 ‘왜 스웨덴의 버스기사가 인도의 버스기사보다 50배의 임금을 받는지’에 관한 글이 있다. 솔직히 50배 운전을 잘한다거나, 50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잖아.

 

나는 학교에서 미국이 선진국이 된 이유를 1)자원이 풍부하고 내수시장이 크며, 2)우수한 교육기관이 많고, 3)다양성에서 생겨나는 창의력이 있어서. 등으로 배워왔다. 고개를 끄덕할 만한 답변이지만 한번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건 답이 안된다. 왜 미국엔 우수한 교육기관이 생겨났고, 자원 많고 별의 별놈들 다 모여 사는 인도나, 중국보다 미국이 잘나가게 된 걸까?

내 생각에 결국은 운이 좋아서 그럴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기회를 잡을만한 준비가 되어있었던 건 미국의 재량이지만 성공은 운칠기삼이 아니던가. 경제적인 면에서 세계 1차, 2차 대전의 승리자는 결국 미국이다. 1차 대전 이전 채무국이었던 미국은 전후 유럽 각국에 대해 채권국의 지위를 누리면서 세계 자산의 40%를 소유하게 된다. 1920년대 미국은 한참 호황을 누리다가 1929년 Black Tuesday에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대공황으로 정말 개망할 상황을 맞이한다. 그때 마침 또한번 2차 대전이 터지면서 무기를 엄청 팔아대며 다시 경제를 회복한다. 결국 두 번의 전쟁 끝에 기존의 강대국이었던 영국, 프랑스가 무너지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던 일본과 독일 마저 무너지면서 세계질서의 중심국가로 미국이 자리매김 한다. 결국 얘들이 20c에 패권을 잡았던 것은 포드가 자동차를 잘 만들어서도 아니오, 에디슨이 과학을 잘해서도 아니오, 루즈벨트가 뉴딜을 잘해서도 아니다. 힘들만하면 다른 나라가 싸워대는 바람에 군수 물자 팔아서 먹고 산 것. 한번 우위를 점하면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금융시장을 재편한다. 그리고는 자유시장원리를 내세우며 사다리 걷어차기 식으로 개발도상국의 보호무역을 반대해 성장의 기회를 박탈하겠지.

운빨이라고 하면 서운해 할 수 있으니 하나만 더 찾아본다면 그것은 지도층이 존경 받는 사회 분위기 이다. 기업가들도 카네기나 빌게이츠, 워렌버핏처럼 열심히 벌어 사회에 환원하는 예가 많았다.잘 사는 사람이 있으면 불법적인 방법이나 부동산 투기로 돈 벌었을 거라고 매도하는 우리사회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열심히 살았고 능력이 있어서 부를 축척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면 OK. 또한 정치면에서도 절벽을 깎아 동상을 만들 만큼 존경하는 대통령들도 많이 둔 나라가 아닌가. 반면 우리나라는 식민지 이후 친일파가 정권을 승계하고 이것이 군부 정권으로 이어져왔고 기회주의적 정치문화로 이 좁은 나라가 지역갈등으로 시름하고 있지 않은가. 역대 대통령들은 감옥을 가고, 자살을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린 시절 어머니로 부터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바람 부는대로 물결치는 대로 눈치 보며 살아라’는 충고를 받았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설치면 피본다, 우리나라는 모순과 부패를 안고 있고, 여기에 편승하는 것이 최선이다’는 우리 국민의 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까.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존경하는 기업인을 찾으라면 누가 있을까? 존경하는 대통령은 더 어렵겠지?

 

다시 테니스 이야기로 돌아와서, 미국 할머니가 캘리포니아의 햇볕아래 나이키 운동화를 신고 테니스를 치는 건 나라가 잘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이 나라가 운도 좋았고, 존경 받는 정치인과 기업가를 양산할 수 있는 문화적 정치적 자질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잘 사는 나라의 지표를 테니스 치는 사람의 수로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내가 돈 잘 버는 샐러리맨이 되면 나와 내 가족이 테니스를 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기업가로 성공해서 좋은 일자리를 만든다면 우리 회사 직원들 까지도 테니스를 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그때 즘 할머니가 될 테니스 한번 못 쳐본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하지? 아 그때 내가 노인 테니스 교실 끊어드리면 되겠구나. 그럼 야구선수 하려다 망해서 통닭 배달하는 내 친구의 부모님은 어떻게 하지? 우리 아들은 내가 테니스 학원 보내면 되겠지만 통닭 배달하는 그 친구 아들은 어떻게 하지?

물론 우리 대부분은 사회라는 게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너라도 테니스 치려면 열심히 살아라고 말하겠지. 그럼 넌 못해도 난 할 수 있으니까 으스대면서 살아야 하나? 그건 좀 치사하잖아. 누워서 TV 보면서 청소하는 이등병 괴롭히는 고참이랑 뭐가 달라? 근데 사회라는게 정말 그렇게 생겨먹었나? 바꿀 순 없나? 여긴 좀 다르게 생긴 것 같은데.

아르헨티나로 갈 기름값도 없는데 남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밤이다.

출처: The Great Yong

댓글 4개:

  1. 현석아! 이글 진짜 좋다 :) 앞으로도 미국 관찰기 틈틈이 올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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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와~ 좋은 글이네요. 제가사는 동네 근처인데 사진으로 나오니까 신기하구요 ^^ 신문에서 기사도 잘 읽엇습니다. 정말 대단하신듯.. ^^ 아 글고 위에 언급하신 것에 사알짝 제 개인적인 소견을 보태자면.. ^^ 위에 말씀하신대로 역사적/정치적/경제적/환경적 이유도 잇겟구요, 여기 사람들은 일단 마인드 set 자체가 다릅니다. 한국분들은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고 서양애들 버릇없고 막나간다고 생각할수도 잇지만, 오히려 서양애들보면 정반대입니다. 제가 미국에 20년넘게 살면서, 공공장소 어디를 가든 어린애들도 남한테 양보 잘합니다. "나"와 내가족,내자식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언제나 우선시합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에서 그런것 아주 철저하게 가르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운동을 무지 많이시키기 때문에, 운동같은것 많이 하다보면 사람 심성이 좀 부드러워지고 단순해집니다. 화합/의리 이런것도 많이 배우고요. 그래서 여기애들은 악에받혀서 성적에 목숨건다거나 그런게 좀 없이 그냥 느긋하고 단순하고 순진합니다. 그런 근성때문에 삶이 좀더 여유가 잇어지는것 같습니다. (물론 일이 너무 느려터져서 안좋은면도 잇어요) 물론 한국은 작은땅에 많은인구가 몰려사니까 모든게 빠르고 악착같이 하지않으면 살아남을수 없는 환경때문에 그렇게 될수밖에 없겟지만.. 암튼 결론은, 교육이 달라서 그런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도, 소수 1%의 지도자나 엘리트층은 부패하고 할짓 다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 순진하고 공공의 유익과 도덕적 가치를 믿는 편이지요. 돈돈돈 하는 분위기가 한국보다 좀 적은편이라고 할까요.. 짧은시간이지만 정말 많은걸 경험하고 가시네요 ^^ 앞으로도 어딜가시든 소중한 경험 하시길 바랍니다. 계속 좋은글/사진 올려주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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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와~ 좋은 글이네요. 제가사는 동네 근처인데 사진으로 나오니까 신기하구요 ^^ 신문에서 기사도 잘 읽엇습니다. 정말 대단하신듯.. ^^ 아 글고 위에 언급하신 것에 사알짝 제 개인적인 소견을 보태자면.. ^^ 위에 말씀하신대로 역사적/정치적/경제적/환경적 이유도 잇겟구요, 여기 사람들은 일단 마인드 set 자체가 다릅니다. 한국분들은 한국이 동방예의지국이고 서양애들 버릇없고 막나간다고 생각할수도 잇지만, 오히려 서양애들보면 정반대입니다. 제가 미국에 20년넘게 살면서, 공공장소 어디를 가든 어린애들도 남한테 양보 잘합니다. "나"와 내가족,내자식만 잘되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공공의 이익"을 언제나 우선시합니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에서 그런것 아주 철저하게 가르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운동을 무지 많이시키기 때문에, 운동같은것 많이 하다보면 사람 심성이 좀 부드러워지고 단순해집니다. 화합/의리 이런것도 많이 배우고요. 그래서 여기애들은 악에받혀서 성적에 목숨건다거나 그런게 좀 없이 그냥 느긋하고 단순하고 순진합니다. 그런 근성때문에 삶이 좀더 여유가 잇어지는것 같습니다. (물론 일이 너무 느려터져서 안좋은면도 잇어요) 물론 한국은 작은땅에 많은인구가 몰려사니까 모든게 빠르고 악착같이 하지않으면 살아남을수 없는 환경때문에 그렇게 될수밖에 없겟지만.. 암튼 결론은, 교육이 달라서 그런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도, 소수 1%의 지도자나 엘리트층은 부패하고 할짓 다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아직 순진하고 공공의 유익과 도덕적 가치를 믿는 편이지요. 돈돈돈 하는 분위기가 한국보다 좀 적은편이라고 할까요.. 짧은시간이지만 정말 많은걸 경험하고 가시네요 ^^ 앞으로도 어딜가시든 소중한 경험 하시길 바랍니다. 계속 좋은글/사진 올려주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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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글 잘 읽었습니다.
    어제 본 글과 연관된 것 같아 올려요.

    '미국이 미국인 이유'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http://bit.ly/guKHj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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